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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뇌졸중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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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졸중 이야기 (일반인)뇌졸중을 이긴 사람들

첫번째 인터뷰
“뇌졸중 이후의 삶, 다시 태어났음에 감사합니다.”
병리학회박사이자 현 을지의과대학교김용일 총장님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 있으니까, 하고 희망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러려면 더 노력을 해야 하는데 생각만으로는 사실 쉽지가 않죠. 어떻게 보면 자신을 계속 속이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뇌졸중은 한 번 발병하면 반신마비나 언어장애, 심할 경우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고 알려진 병입니다. 때문에 뇌졸중을 앓는 사람들 대부분이 쉽게 좌절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포기해버릴 경우 질병은 더 강하게 우리 몸을 공격하곤 합니다.

대한뇌졸중학회는 현재 뇌졸중을 앓고 있는 환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희망을 전달하고자, 뇌졸중을 극복해낸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그 첫 번째로, 뇌경색을 앓은 후 다시 건강을 되찾은 병리학박사이자 현 을지의과대학교 김용일 총장님을 만나봤습니다.

Q선생님 안녕하세요, 오늘 뵙고 나니 뇌졸중을 앓으셨다는 게 믿기지 않네요

그런가요?(웃음) 병을 앓고 난지 14년이 지났는데, 별다른 후유증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저 감사할 뿐이죠.

Q총장님께서 경험하신 뇌졸중에 대해 자세한 설명 부탁드려요.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네요. 1993년 1월 8일, 일요일의 늦은 아침이었습니다. 일요일이라 실컷 늦잠을 자고 10시쯤 일어나 밥을 먹으러 부엌으로 갔죠. 아내가 미역국을 끓였더라고요. 국에 참기름을 한 방울 넣었는데, 그 냄새가 굉장히 역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구토가 치밀어 올랐죠. 식사 후 방으로 돌아왔는데, 그만 먹은 걸 다 토하면서 방바닥에 쓰러졌습니다. 머리가 어지럽고 방 안 전체가 빙빙 돌면서 의식은 있는 둥 마는 둥 하는 상황이었요. 아내가 깜짝 놀라 여기저기 연락을 했죠. 마침 옆집에 제 대학 동기가 살았는데, 산부인과 의사였어요. 그 친구가 제게 일단 링거를 투여해줬고, 서둘러 응급실로 향했지요.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갔는데, 저는 거기까지만 기억나고 그 뒤로는 전혀 생각이 안 납니다.

Q얼동안이나 의식이 없으셨나요.

입원한 후 열흘 동안이나 의식이 없었어요. 열흘 후 깨어나긴 했는데, 그 열흘 동안은 완전히 망각상태, 전혀 기억이 없었죠.

Q선생님의 병명은 정확히 뭐였나요.

뇌경색이었어요. 의사들이 검사를 해보고는 소뇌에 경색증이 온 것 같다고 했대요. CT촬영을 해보니 소뇌로 가는 혈관이 막혀서 피 순환이 안 돼 경색이 왔다고 하더군요. 경색을 가져오는 주원인이 피의 응고인데, 그 응고된 핏덩어리들이 소뇌로 가는 혈관을 막아 피 순환을 막고 결국 뇌가 죽게 되는 겁니다. 일단 약물 치료를 시작했는데 제 상태가 그다지 호전되지 않았대요. 의사들이 번갈아가며 진찰을 해보더니 위험할 수 있다고 했답니다. 그 때 제 아내 심정이 어땠겠어요. 저희가 성당을 다니는데, 아내는 제가 죽을 거라고 생각해 성당 신부님께 연락을 했다고 합니다. 종부성사라고 들어보셨나요? 가톨릭에서 병자나 죽기 직전의 사람에게 기도를 해주고 하느님께 인도하는 의식입니다. 다들 제가 죽을 거라고 말하니까 신부님께 부탁을 드린 거죠. 결국 신부님이 저한테 종부성사를 해주셨습니다. 저는 그 종부성사를 받고 사망선고를 받은 거나 다름없는 채 수술을 받으러 간 겁니다. 저를 수술한 의사에게 들어보니 저처럼 소뇌경색증으로 수술한 사람 네 명 중, 세 명은 모두 저 세상으로 갔다고 하더군요. 저도 다들 죽을 거라고 했어요. 하지만 이렇게 살아있습니다(웃음).

Q정말 드라마 같은 일이네요, 수술하고 난 후 상태는 어떠셨나요.

수술하고 처음 잠에서 깨어났을 때 전신이 가려워서 못 견딜 정도였어요. 왜 이렇게 가려운건가 했더니, 약 때문에 황달 증세가 온 거예요. 그 후에는 변비가 와서 관장약까지 투여했는데 그래도 해결이 안 되더라고요. 변기에서 2시간 반 동안 앉아있던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수술 직후라 힘을 주면 안 된다고 해서 제대로 힘도 못 주고 아주 힘들었죠, 하하하. 치료 과정에서 약물을 투여 받으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병이 발발한다고 해요. 병의 악순환이죠. 그건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거예요. 수술 받고나서 한 동안 다리를 사용 못하니까 다리도 팔처럼 가늘어졌었어요. 제 취미가 사진 찍는 건데, 이제 그 일도 못 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학교도 그만둘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죠. 이런 저런 부작용이 많았거든요. 그런 증세들 때문에 수술 후 석 달 후에야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Q뇌졸중은 치료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도 중요하다고 들었어요, 어떤 마음이셨나요.

한 마디로 좌절이죠. 짧은 인생이었지만 그 동안 학생들만 가르치면서 살아왔는데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상실감이 가장 컸죠. 많이 외로웠어요. 무엇보다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재활센터에서 안 해 본 운동이 없었을 정도예요.

Q후유증이나 증상 재발은 거의 없으셨다구요?

네, 감사하게도 지금까지 그런 적은 없어요. 다만 퇴원 후 간혹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린다는 느낌은 있었어요. 퇴원 후 일주일 만에 다시 강의를 시작했는데, 수업 시간에 슬라이드를 사용하면 간혹 어지럽다는 생각이 들었고, 택시를 탈 때도 기사가 급제동을 자주 하니까 속이 안 좋더라고요. 그래서 일부러 스피드가 일정한 지하철을 타고 다녔어요.

Q그 후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셨나요.

많이 걸었어요. 제가 집이 효자동인데, 인왕산을 다녀오면 왕복 2시간 정도 돼요. 지금까지 7년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 그 길을 다녔어요. 그 때 제가 다른 운동 말고 계속 그것만 했는데, 유산소 운동의 효과를 실감했습니다. 혈압도 좋아지고 기분도 좋아지고. 뇌졸중 이후 우울증에 빠지는 사람도 많거든요. 운동이 정말 중요합니다, 지금도 꾸준히 걷고 있어요. 그 때 운동하면서 재미있는 일도 있었습니다. 인왕산에서 산보하면서 숨이 차니까 중간 중간 앉아서 쉬곤 했어요. 그럼 밑으로 청와대가 멀리 보이거든요? 거기 앉아서 글도 쓰고 교정도 하고 했어요. 그런데 언젠가 앉아서 교정을 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군인 둘이 나타나서 꼼짝 마! 이러더라고요. 청와대 근처니까 감시가 심하잖아요? 저한테 뭐하는 거냐고, 청와대 스케치하는 거냐고 하더라고요. 나중에 신원 확인하더니 조심하라고 하더군요. 두 번이나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 다음부터 다시는 거기서 글은 안 써요(웃음). 그래도 그때 쓴 글로 서울대학교에 의학교육연수원에서 교재로 쓸 책도 냈어요. 실 예를 들어가며 학생들을 가르치자는 취지에서 낸 겁니다.

Q총장님이 뇌경색을 앓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제가 그 당시 58세였어요. 고혈압이나 당뇨는 없었지만 하루에 담배 두 갑을 피웠거든요. 병리학 선생이니까 학생들에게 뇌경색 원인에 대해 가르치는데, 혈관을 막는 작용을 하는 것 중 담배가 가장 심각해요. 그런데 알면서도 하루에 담배 두 갑을 피운 거예요. 게다가 그 때 당시 학교 부학장이다 보니 신경 쓸 일도 많잖아요. 또, 쓰러지기 며칠 전에 동료 의사 환송회가 있어서 술을 심하게 많이 마셨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그 이유 말고 아무 것도 없어요. 운동도 거의 못하면서 담배 피우고 술 많이 마시고. 제 머리 뒤쪽에 수술 자국이 있는데 머리 손질하러 갈 때마다 이발사가 그 얘기를 해요. 그런데 이제는 거의 안 보인다고 그러더군요(웃음).

Q건강을 다시 찾으신 후 생활습관이나 사고도 많이 달라지셨을 것 같아요.

언제였더라, 병원에서 퇴원하기 하루 전이었을 거예요. 집에 한 번 가봤는데, 1월에 입원해서 석 달이 지났으니까 3월 하순 봄이잖아요. 마당에 봄볕에 조금씩 올라온 새싹이 있었는데, 그걸 보니까 아, 이제 살았구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학생 가르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아는 게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일 이후 학생들을 가르치는 철학도 변했어요. 그 전에 저는 이론을 중시하고 학생들에게도 이론을 강요하는 선생이었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실사구시(實事求是)입니다. 수업시간에 제 경험을 예로 들어가며 설명을 해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학생들이 이해도 쉽게 하고 훨씬 더 재미있어 하죠. 확실히 성적도 훨씬 좋아졌어요. 저는 그 일이 있은 후로 담배도 끊고 술도 안 마십니다. 물론 조금은 마시고 있어요(웃음). 아마 학생들도 제 얘기를 듣고 담배는 정말 안 좋다는 걸 깨달았을 겁니다. 그리고 환자를 대할 때 신뢰와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어요. 한국 사람들이 한의원을 신뢰하는 이유는 환자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주기 때문이거든요. good listener, 좋은 경청자. 의사들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고 학생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가르침의 보람을 찾았다는 게 저한테는 큰 득입니다.

Q뇌졸중 환자들은 쉽게 좌절하는 경향이 있는 거 같아요.

제가 수술 받고 얼마쯤 지나서, 어느 날 강남성모병원에 입원해있는 한 환자에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소뇌에 뇌경색, 저와 같은 병을 앓고 있던 사람인데 곧 죽을 거라고 우울증에 빠져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의사에게 제 얘기를 듣고 전화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때 제가 그 환자를 도울 일이라곤 그저 설득하고 용기를 가지라는 말이었습니다. 제가 믿음을 버리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니까 살아났잖아요. 그것도 퇴원 후 일주일 만에 다시 강의를 했거든요. 병에 대한 치료보다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절실하게 깨달았어요. 제가 의사로서 누군가에게, 환자에게 용기를 준 건 그게 처음이었어요. 그 전에는 그런 희열을 느껴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 후로 그 환자 소식을 들었는데, 희망을 찾고 굉장히 열심히 살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다들 죽을 거라고 말했던 제가 그렇게 살아나서 열심히 살고 있으니 그 분도 희망을 얻으신 거예요. 그 분의 전화가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됐습니다. 그 전에는 그저 제 일만 하고 공부만 했거든요. 하지만 그 날 이후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많은 건 못 하지만 담배 피우면 나처럼 된다, 이런 건 자신 있게 얘기해줄 수 있어요. 금연홍보대사 하라고 하면 할 거예요(웃음).

Q지금 병을 앓고 계신 분들에게 한 말씀 해 주세요.

저도 혼수상태에서 막 깨어났을 때 다른 환자들처럼 몸이 마비되거나 혹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의 좌절과 실망은 말로 표현 못해요. 지금 여러분들이 힘들어하는 마음을 저도 겪어봐서 이해하고 있습니다. 병은 앓아본 본인 외에는 아무도 그 고통의 무게를 모르는 법이죠. 하지만 사망선고까지 받은 저는 이렇게 살고 있지 않습니까? 수술 후에 살겠다는 의지가 없었다면 다른 분들처럼 몸이 마비되거나 언어장애가 왔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절대 포기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그 생각을 하는 순간 여러분은 뇌졸중에 지는 겁니다. 어려움을 딛고 다시 일어섰을 때, 그 순간 여러분은 다시 태어나는 거예요. 그 전에 저는 감사라는 걸 잘 모르고 살았습니다. 제가 일한 것에 대한 당연한 보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이제 감사, 고마움이 무엇인지 알게 됐습니다.

Q선생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건강 계속 지켜 가시길 바랄게요.

네 감사합니다, 여러분도 부디 술, 담배 끊고 건강하게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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