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떠보니 내가 알 수도 없는 이상한 공간에 와있었다. 여기가 어딜까. 실내의 벽은 금속으로 되어있고, 조용했다. 낯선 사람들 한 두 명이 내 주위를 지나갔다. 이곳이 우리 집은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왜 여기에 있나. 몸을 일으키려니 움직일 수가 없었다. 누워있는 채로 손을 들어 사람을 부르려했다. 손이 들려지지 않았다. 손은 묶여있었다. 내 몸이 침대에 뉘어져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곳이 어디일까. 또 나는 왜 누워있나. 무언가 잘 못된 일이 일어났다. 순간 나는 생각했다. 여기는 이상한 곳이다. 어쨌든 이곳을 빠져나가야한다. 빨리 집으로 가야할 텐데…. 집에 두고 왔을 아이들 생각이 났다. 얼른 가서 아이들 밥을 해주어야 할 텐데….
묶인 손을 조금씩 움직여 보았다. 끈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손이 느슨해지자 몸을 옆으로 움직여 침대 칸막이 밑에 난간 사이로 빠져 나가려고 발을 내려 보았다. 그 순간 누군가의 손이 다가와 내 몸을 흔들어 자세를 반듯하게 펴놓았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그곳은 성모병원 중환자실이었다. 나중에 일반병실로 옮겨온 후 가족들이 말했다. 날씨가 차갑던 날, 내가 쓰러졌다고. 그날 성당모임에 갔던 남편은 그날따라 일찍 집에 오고 싶었다고 한다. 들어오니 내가 컴퓨터 옆에 쓰러져있고, 남편은 급히 119를 불러 병원으로 옮겨 뇌수술을 했다. 무의식에 사경을 헤맨 후 뇌수술을 하고 며칠 만에 눈을 떴는데, 사흘 후 또다시 의식을 잃고 두 번째 수술을 해야 했다. 그 후 보름 만에 겨우 의식이 돌아왔다. 모두들 기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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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상태가 보름이 되기 하루 전, 오늘 깨어나지 않으면 어렵다고 했다. 남편과 아이들은 성모병원 내 성당에 가서 한밤중에 기도를 올렸다. 개신교회에 권사인 시누이 남편이 이를 보고 그냥 조용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안 들어 주시고 아주 가능한 한 큰소리로 기도를 올려야한다고 충고했다. 마음이 다급해진 남편은 어두운 새벽녘에도 또 아이들을 데리고 캄캄한 성당에 들어가 소리 지르며 기도했다. 아마 불교신자라도 이슬람신자라도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아직 의식이 없는 채로 중환자실에 누워있는데 어둠속 어디선가 조그만 소리가 들려왔다. 아련한 기도소리였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아...멘...
그 소리에 내 귀와 눈이 신기하게 조금씩 열리는 것 같았다. 천정 저 구석 모퉁이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명동에 있는 가톨릭계통 여학교를 다니던 시절 교실에서 수업을 받던 중 정오 12시만 되면 스피커에서 교장수녀님의 삼종기도소리가 매일 들려왔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나는 그 시절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누운 채로 성호를 그었다. 하지만 양손과 팔에 온통 주사바늘이 꽂혀 있고 묶여있어 팔을 들 수가 없었다. 난 입을 움직여 보았다. 아직 목소리도 나오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마음속으로만 스피커와 함께 기도를 올렸다. 소리가 나오지 않는 입으로 스피커 소리와 함께 부르니 두려웠던 마음이 신기하게도 안정되어갔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로 시작하는 아침 기도문이 수술 후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머릿속에서 그대로 기억에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오늘도 말과 생각과 행위를 평화로이 이끌어 주소서...’하고 기도문을 마치니 마음이 평화로워 지는 것 같았다. (아마도 불교신자라면 부처님께 기도할 것이고, 이슬람신자라면 마호메트님께 간절히 기도할 것이다. 알지 못할 강한 힘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의식이 돌아오자, 재활의학과 선생님이 내 오른 발을 만지며 물었다. “감각 있어요?”
나는 작은 소리로 네, 하고 대답했다. “움직여보세요.” 난 오른 발을 조금 꼼지락거렸다. 선생님이 “다시 왼발을 움직여보세요.” 난 왼발은 감각은 있으나 움직여지지 않았다. 선생님이 “됐어요.” 하고 말했다. 그날부터 재활치료에 들어갔다. 매일 매일의 재활치료가 무척 효과 있었다.
주치의 선생님이 회진 왔다. 내가 물었다. “선생님 제가 혈압이 있었나요?”
“아니요. 혈압과 상관없이 혈관기형입니다.” 했다. 혈관에 구멍 같은 꽈리가 있었다고 했다. 꽈리…….그 옛날 어렸을 적 앞마당에 피어오른 꽈리. 아주 예쁜 꽃이었다. 그때 나는 친정 엄마 생각이 났다. 우리 엄마도 이 십년 전 뇌출혈로 돌아가셨다. 엄마의 머릿속에도 꽈리가 있었다고 했다. 근데 왜 나는 그 생각을 하고 미리 예방을 하지 않았을까. 결국 내 탓이다. 건강에 너무 소홀, 아니 너무 자신했던 탓이다. 미리 혈압관리를 하고 뇌혈관 촬영도 했어야했는데. 내 친구들이 내 소식을 듣고 몰려들어, 10명쯤 모두 병원에서 뇌혈관사진을 찍었다고 했다. 그중에 두 명이 머릿속에 꽈리를 발견했다고 했다. 미리 치료하면 잘 나을 수도 있고 위험하지도 않다고 했다. 나도 미리 예방을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무의식중에서인지 의식이 돌아오려고 하는 순간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깨어나기 전 꿈속에서 엄마를 보았다. 늘 그리운 엄마. 발밑에 물이 흐르고 있었고, 어떤 좁은 길을 엄마와 내가 앞을 바라보고 손을 잡고 걸어갔다. 중간쯤에 가다가 엄마가 내 손을 슬며시 놓고 앞으로 쓰윽 가버렸다. 나는 좁은 길을 혼자 남아 멍하니 멈추어서 있다가 길을 되돌아왔다. 그리고 눈을 떴다. 어쩌면 병원성당에서 남편이 나를 살려달라고 기도하던 그 순간에 동시에 일어난 상황인지도 모른다. 엄마를 닮았을 테니 미리 조심해야했을 것을.
우리 가족과 아이들에게도 미리 건강 챙기라고 당부해야겠다. 세월이 지나 별 불편함 없이 아직도 건강하게 지내고 있음에 모두 감사드린다. 특별히 두 번씩이나 뇌수술을 집도해주신 의사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스피커소리가 새벽 어둠속으로 사라진 후 나는 그 기도의 뒤끝이 편안하고 친근하여 몸이 묶인 채로 마음을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또 기도를 이어갔다. ‘하느님 저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저를 구하소서…….’ 그렇게 하고보니 왠지 그 상황에서 구해주실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아버지 하느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내가 병원에서 의식을 겨우 회복하였을 때 어렴풋이 들려왔던 소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하는 삼종소리였다. 마침 성모병원이었고 그래서 나중에 생각해보니 스피커에 내장된 소리가 나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하느님은 하늘에만 계시지 않고 한낮 기계에 지나지 않는 스피커 속에도 숨어 계시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어느 곳에든지 계시는 하느님이시니 아마도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깨달았다. 하느님은 반드시 계신다. 우리가 간절히 찾기만 한다면. 불교의 부처님도 이슬람교의 마호메트도 다 마찬가지이다.